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테오도시우스 2세 (문단 편집) === 누나 [[아일리아 풀케리아]] === [[파일:external/www.forumancientcoins.com/08856p00.jpg]] 414년, 친위대장이자 섭정인 안테미우스가 병사하자 황제의 누나 풀케리아가 불과 16세의 나이에 아우구스타에 올랐다. [[아우구스타]]는 황제의 누이나 아내, 어머니 등 매우 가까운 황실 여성에 대한 존칭으로써 그녀는 죽기 전까지 그 지위를 유지했다. 신앙심이 깊고 의지력이 강한 풀케리아는 섭정이자 아우구스타로 도덕적, 정치적으로 동생 테오도시우스 2세를 직접 교육하고 보호하였다. 그 결과, 궁정 문화와 생활은 수도원을 연상시킬 정도로 경건하게 바뀌었고[* 어머니 아일리아 에우독시아의 궁정생활이 매우 화려하여 [[요한네스 크리소스토무스]] 콘스탄티노플 대주교[* 당시에는 대주교(Archbishop)가 맞다. 451년 칼케돈 공의회의 결과로 '총'대주교(Patriarch)로 승격되었다.]에게 사치스럽다고 비판받았던 것과 완전히 대조된다.], 황제와 풀케리아의 두 여동생은 풀케리아의 설복에 평생 정절을 지키며 살기로 서약했다. 하지만 이 때문에 [[테오도시우스 왕조]]가 오래 이어가지 못하게 되었다. 풀케리아는 공식적으로 테오도시우스 2세가 15세 생일을 맞은 날부터 섭정으로써 임무가 끝이 났지만, 그 뒤에도 오랫동안 실세로 남았다. 아랫 문단의 에우도키아 황후와 궁정 암투를 벌였지만 남동생이자 남편인 황제가 아내보다도 누나 편을 들어주는 경향이 컸고, 궁정생활에 지쳤으며 남편과도 멀어지게 된 황후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443년에 황궁을 나가서 460년 죽을 때까지 예루살렘에 기거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